군북의 백이산 숙제산
중국 고대 은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의 이야기인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 첫 장에 나온다. 사마천이 사기 열전의 첫 머리에 굳이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기술한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충절의 중요성만 강조하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라면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간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으리라.
경남 함안의 최서단 읍면인 군북면에 솟아 있는 백이산(368m)과 숙제봉(356.2m)은 바로 이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원래는 쌍안산, 쌍봉산 등으로 불렸지만 조선 초기 세조(수양대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을 때 이에 반대한 생육신 중 한 명인 조려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 산 아래에 은거, 세상을 등지며 살았다. 그의 충절을 기리면서 이후 숙종 임금이 백이숙제의 이야기에 빗대 찬양했고, 이후로 산 이름도 백이산 숙제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유난히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투사가 많이 배출된 군북 사람들의 충절 정신도 백이산 숙제봉의 기상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지역민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부분이다.
◇ 백이숙제 못잖은 14세기 조려公 충절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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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취재팀이 아담한 돌탑이 세워져 있는 함안 백이산 정상에 오르고 있다. 북쪽 멀리 남강 저편에 의령 자굴산의 위용이 눈에 들어오고, 그 왼쪽 가까이는 방어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함안과 진주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백이산~숙제봉~오봉산(524.7m) 연계 코스를 답사했다. 3000여년 전 백이숙제의 고사를 떠올리며 한적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코스다. 특히 산행로를 감싸주는 울창한 소나무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원없이 들이킬 수 있고, 약 1억 년 전 유적인 공룡발자국(별도 기사 '떠나기 전에' 참조) 화석도 둘러볼 수 있는, 볼거리 많고 편안한 알짜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 백이산 중턱 공룡발자국 화석 100여 개
- 문화재 지정 불구 보존·관리 대책 미비
이번 주 답사코스의 첫 번째 봉우리인 함안 백이산에는 약 1억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룡발자국 화석 유적이 있다.
2004년부터 2005년, 2009년 등에 인근 주민 이영부(63·전 평광이장) 씨와 부인 마금자 씨에 의해 발견된 이 공룡발자국 화석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방아 2012년 2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로 지정 고시됐다.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618, 산 59-1, 산 60-1 등 3필지 3457㎡에 걸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지층인 함안층 상부의 퇴적층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행렬이 잘 드러나 있으며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발자국의 둘레와 깊이가 원형에 가까워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됐다.
인근 고성군의 바닷가 공룡발자국과 달리 산 3부~5부 능선에 폭 넓게 100여개 넘게 분포한다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가장 큰 발자국인 5개의 용각류의 발자국은 크기가 80㎝, 오른쪽과 왼쪽 발자국 사이의 보폭이 125㎝, 앞발자국과 뒷발자국 사이의 장보폭이 225㎝에 이르고 가장 작은 것은 크기 35㎝, 보폭 80㎝, 장보폭 90㎝의 조각류 발자국이다.
학계는 9600만~9700만년 전에 초식공룡들이 호수 주변의 부드러운 뻘을 시속 500m 이내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이 굳어져 암석이 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 화석들 중 일부가 백이산 둘레길의 산책로에 그대로 노출돼 있어 사람들이 마구 밟고 지나다닌다는 점은 훼손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문화재나 유적에 대한 무조건 적인 폐쇄적 관리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보존 대책이 마련돼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