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영광 불갑산 20130926

benel_jt 2013. 9. 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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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불갑산

20130926 목


07:10 덕천역 출발-김해 -진영운동장(08:45)
12:08 주차장
12:45 [불갑사0.8, 주차장1.4, 묘량1.0, 노적봉0.4]
13:29 [덫고개0.4, 노적봉0.1]
13:31 노적봉 [법성봉0.2, 덫고개0.4]
13:37 법성봉[노적봉0.2, 투구봉]
13:46 투구봉[장군봉, 법성봉]
13:57 장군봉[노루목0.3, 투구봉0.3]
14:03 노루목[장군봉0.3, 밀재2.2, ..]
14:05 [안전한 길, 위험한 길]
14:16 [노루목0.5, 연실봉]]
14:18 연실봉[구수재1.3, 노루목0.5], 통천계단
14:30 [구수재1.1, 용천사2.2]
14:53 [연실봉1.3, 용천사1.03, 동백골1.0]
15:00 [용천사__, 구수재0.2, 용봉__]
15:05 용봉 [용천봉0.4, 구수재0.4]
15:14 용천봉[모악산0.6, 도솔봉0.3, 용봉0.4]
15:20 도솔봉[수도암0.4, 불갑사1.1, 용천봉0.25]
15:52 [불갑사1.0, 불영대0.6, 구수재1._]
15:56 동백골[불갑사0.9, 해불암0.9, 구수재1._]
16:02 [불갑사0.4, 도솔봉0.9, 동백골]
16:17 참식나무 자생북한지대
16:24 탑원
17:20 하산후식

몇 년 전에 다녀온 산이라 가지 않을까 했었는데

처음에 연실봉으로 바로 올라갔기에 이번에는 완주를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갔다.

상사화는 시들기 시작하는 시기였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부산에서 07:10에 출발하여 바로 간다면 더 이른 시간에 산행이 될텐데...

 

 

 

 

 

 

 

 

 

 

 

 

 

 

 

 

 

 

 

 

 

 

 

 

 

 

 

 

 

 

 

 

 

 

 

 

 

 

 

 

 

 

 

 

 

 

 

 

 

 

강항로2길, 강항로1길에 내산서원이 강항을 배향한 서원이다.

1.5km 거리인데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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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산[佛甲山]
높이 : 518m
위치 :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상사화(꽃무릇)축제 9/18(수)-24(화)

백제 때의 고찰인 불갑사를 품고 있는 그다지 높거나 크지는 않다. 그러나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포근한 느낌을 주고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늦가을 정취가 그윽하다.
불갑사 옆 계곡을 따라 핀 오색영롱한 단풍과 불갑사 마당의 노란 은행나무가 늦가을 정취를 나아낸다. 단풍 절정기는 대략 11월 초순~중순 무렵이다.
남도의 봄은 빠르고도 아름답다. 붉은 동백꽃이 송이 채 뚝뚝 떨어지는 동백골, 온통 길을 뒤덮은 맥문동, 암자터의 굵은 왕대숲, 멋대로 자란 비자나무. 해불암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가 장관이다. 일출을 보려거든 경주의 토함산을,낙조를 보려거든 영광의 불갑산이라 할 만큼 낙조가 볼만하다.
불갑사 경내에는 보물 830호인 대웅전과 고려 공민왕 8년(1359년)에 이달충이 세운 진각국사비를 비롯하여 팔상전,보광전, 명부전, 칠성각, 만세루, 천왕문, 일광당, 산신각, 관사정 등이 있다.

佛甲寺
부처불, 첫째갑 : 백제불교의 첫째 사찰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


영광은 한자로 靈光이라 쓴다.
종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이름이겠다.
불교도래지 법성포, 원불교의 대종사 소태산의 생가와 대각지 등 원불교성지에 중심이 되는 대학까지 그 곳에 있다.

영광은 천주교 순교의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광 지역은 신해박해(1791년) 이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천주교가 전파됐다. 역시 바닷길의 위력이다. 이번엔 환대받지 못했다.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지 못했다. 신유박해(1801년) 때 교인 이화백과 복산리 오씨가 순교했다. 병인박해(1866년) 때는 김치명·유문보가 처형됐다.
도동리 석장승 남쪽인 현 순교자기념성당(영광성당) 정문 앞이 순교 터로 추정된다. 옛날 우시장이 있었다 한다. 현장을 지켜봤을 석장승은 지금도 그대로다. 높이 120㎝ 길쭉한 돌덩이 두 개를 세우고 익살스럽게 눈, 코, 입을 새겼다. 성당 앞에는 순교자를 기리는 기념문을 세워 아픔을 보듬고 있다.

기독교 순교지인 염산교회·야월교회가 있다.
교인 77명이 순교한 옛 염산교회를 복원했다.
서해 바닷가 도로 백수해안도로 따라 남쪽으로 간다. 염산교회는 6·25전쟁 때 김방호 목사를 비롯해 교인 77명이 희생됐다. 공산군이 무참히 살해했다. 보복은 없었다. 전쟁 후 김 목사의 유일한 생존 아들 김익 전도사는 공산군 편에 섰던 주민을 용서하고 복음을 전했다. 참회의 눈물이 흘렀다. 지금 교회 마당에는 순교자 합장묘, 순교 기념비가 있다. 2016년 9월 옛 예배당을 복원했다.

보복이 있으면 끝이 없게 되며 결국은 공멸이 있게될 뿐 아니겠는가.

기회가 되면 염산교회를 탐방해 보아야겠다.
그것도 용서의 기운을 이 땅에 파급하는 깃발이 될 수 있을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