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대구 중구 근대로 2차 탐방 20210914 화

benel_jt 2021. 9. 14. 21:00

대구 중구 근대로 2차 탐방 20210914 화 솔로

 

코스 : 대구역-경상감영공원-종로초등학교 최제우 나무-순종남순행길-달성공원,관풍루-달성공원역<전철이용구간>건들바위역-대구향교-천주교대구교구,성직자묘역,안익사,성모당,김대건동상-최제우순도비-진골목-동성로-2.28기념공원-국채보상공원,국채보상기념관,화폐전시관<택시 이동>대구역 <전체 이동거리21.5km/4:52'(전철3.4km/7', 택시1.4km/7' 포함)21.5-4.8=16.7km도보>

 

이번 주에도 비가 오는 날이 많다.

어제가 좋았는데 치과 예약이 먼저 잡혀 오늘 화요일을 선택했다.

광양이나 완사, 창원지역은 일기예보에 강수량이 많아 대구지역을 보았는데 12시~15시에만 1~4mm 60% 강수확률이기에 우산을 들고 출발했다.

종일 우산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귀가 시에 우리 동네에는 빗방울이 약간 있었으나 우산을 들지 않았다.

 

일단 산길샘에다 루트를 그렸다.

꼭 그대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14km 정도가 조금 더 되는 거리였다.

직선으로 그었으니 그보다는 훨씬 더 나올 것이다.

종로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전에 들렀던 경상감영을 다시 보았다.

종로초등학교의 최제우 나무 400년생 회화나무를 보려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 거리가 늘어났지만 골목길도 문화의 흔적을 벽화로 나타내었다.

달성공원에서부터 거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풍루와 몇 개의 비석만 보고 올 생각이었으나 토성 전체를 한바퀴 돌았다.

상당 부분 동물원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 가까운 약간 높은 곳에 다른 동물에 비해서는 체구가 큰 코끼리도 보였다.

성곽을 도는 동안 물개의 부르짖음이 들렸는데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서문이 성 위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안내도를 다시 보니 저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

달성공원에서 나와 달성공원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3호선은 지상의 고가로에 있는 게 특징이다.

처음 계획은 전체 코스를 걷는 것이었는데 달성공원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져서

코스를 수정, 전철을 이용하여 건들바위역으로 갔다.

건들바위와 향교를 보고는 천주교 대구교구 방향으로 이동하여 국채보상 공원 방향을 마지막으로 잡을 계획이었다.

지난 번에 천주교 대구교구까지 갔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대구역으로 올라가면서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관람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국채보상 공원에서 끝낼까 했는데 화폐전시관까지 보게 되었다.

대구역까지 직선거리로 1km 정도라고 보고 2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화폐전시관에서 나오면서 그 긴 교차로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반대 방향으로 잡고 가는 바람에 급해졌다.

기차 시간도 잘못 기억하여 10분이 더 필요한데 헛걸음까지 했으니

12분 정도 남기고 택시를 잡았다. 대구역에 내리니 4분의 여유가 있었다.

빈 시간이 없이 움직인 하루였다.

한 시간 앞선 기차를 이용하여 시작했으면 더 여유가 있었을 걸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3호선을 타고 건들바위 역으로 가면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앞산 등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성내동 부근을 지나면서 보았던 현수막이 재건축과 관련된 것들이 보였다.

20년이 채 되지 않은 우리 아파트도 리모델링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국적인 어떤 조직이 있는 듯한 감이 든다.

언젠가는 이 일로 또 커다란 부정 부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솔직히 표현하면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래서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도시주거환경'이라는 주제어로 검색했더니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관련 법령이 보였다.

이건 분명하다. 배후에 무슨 일이 있으리라는 ....

 

 

지도에서 청라언덕을 중심으로 한 코스는 지난 번에 다녀온 곳으로 중복 표시되었다.

색깔을 달리할까 했으나 별로 큰 의미가 없어 중복된 지도로 남겨 둔다.

필요하면 GPX트랙을 참고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오룩스 지도는 오늘의 구간만 나타내고 있다.

 

오늘 탐방구간 GPX 트랙 파일 첨부 : 달성공원역-건들바위역, 국채보상 공원, 화폐 전시장~대구역은 대중교통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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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 공원, 바로 옆이 종로초등학교라 최제우 나무로 명명된 보호수를 보기 위해 중복된 길을 걸었다.

 

종각과 분수대를 지나서 종로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전번에 못 보고 지나친 비석들을 보고

 

경상감영 공원에서 종각 방향으로 나서면 바로 '대구 근대역사관'이다.

마침 조용한 시간이라 잘되었다면서 들어가서 열을 체크하고, 핸드폰으로 입장을 인증하려는데 

안내자 한 분이 나와서 '단체 예약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한다.

무슨 이런 일이 단체가 있어도 개인 탐방객이 그들에게 방해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 단체가 무슨 불법이나 불량 단체란 말인가.

포학한 소수의 다수 같은 횡포에 두려워 무너진 민주주의의 폐단에서 나온 것 아닐까

이 건물은 1932년 조선 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것으로 2011년에 근대역사관으로 개관.

르네상스 양식을 차용해 지은 것으로 원형보존이 잘 되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구시 유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되었다.

 

감영 공원 바로 좌측에 종로초등학교를 찾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역사길이라는 골목을 스쳤다.

구 종로초등학교가 아니고 '대구종로초등학교'다. 정문의 위치를 잘못 예측한 때문에 한바퀴 돌았다.

 

교문 안쪽의 담벼락에 꾸며진 벽은 대구의 근대사로 채워졌다. 주로 삼일운동 등 항일 관련

정면에 보이는 나무가 400년 수령의 회화나무로 최제우 나무로 명명하고 있다.

보호수 지정사유에는 최제우 이야기가 없다. 그 아래의 해설에는 그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있다.

인근 경상감영의 역사와 함께한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도심 속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령이 오래된 수목으로 보존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이 학교의 어느 곳이 당시에 경상감영의 옥터였을 것이다.

 

최제우(崔濟愚) 나무
최제우(1824~1864)는 경주 출신으로 호는 수운(水雲)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읽었고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각처로 떠돌아다니며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전통 민간사상과 유불선(儒佛仙)의 장점을 융합하여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사상을 주창하는 민족종교,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민심을 혼란케 한다는 죄목으로 

경상감영 감옥(현 대구 종로초등학교)에 구속시켰다가 참형을 결정하여, 아미산에서 순도 하였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이 회화나무는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최제우(崔濟愚) 나무"라 이름하였다.

 

 

최제우(崔濟愚) 나무

이상화 생가, 지난 번에 본 계산동의 이상화 고택과는 별개다.

주로 알려지기는 출생하고 성장한 이곳보다는 고택이 홍보의 주를 이루고 있다.

 

2021년 갑자기 전국적인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20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리모델링을 하라고 신청을 받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도시주거'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다음의 항목들이 나타난다.

1918.5.29 [대법원 규칙 제2792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등 등기 규칙

2021.11.11 [법률 제18388호](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2021.7.27 [법률 제18345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7.27 일부 개정)

2021.7.14 [대통령령 제31892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2021.8.27 [국토교통부령 제882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규칙

 

우리 아파트와 이웃 아파트, 그리고 지역 신도시 아파트들에서

현수막 걸고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 게

2021.7.14부터 이어진 이 법령들 때문인 것 같다.

 

적폐 청산이라고 했을 때 이런 일들의 뒤에 일어나는 폐단들이 청산되리라고 예상한 것은 

IT 기술의 발달과 보편화로 정보가 투명해지기 때문에

깨끗하게 진행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건 도대체 

'국민의 다수는 바보'라고 하던 

프랑스의 정치학자 푸르동의 말에 빠진 자들의 행태만 보인다.

 

 대구지역의 원도심은 재개발의 필요가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신도시로 개발한 20년 정도의 아파트를 지금 리모델링하겠다고 하니 앞으로는 주기가 더 빨라지겠네.

이런 법을 만드는 주체가 정말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득을 생각하는 것일까.

 

다양한 오토바이들이 진열된 거리를 지난다.

 

황제지보.. 이건 옥쇄가 아닌가

 

순종 어가가 지난 길이라고 한다.

순종황제의 남순행은 일제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고 한다.

순종황제 동상의 뒤로는 달성공원 정문이 보인다.

 

 

공원의 상당 부분이 동물원이다.

수운 최제우 동상이 관풍루 아래쪽에 있다.

 

대구 달성[大邱 達城]

대구 중구 달성동(達城洞)에 있는 삼국시대 성지(城址). 사적 제62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크기 : 면적 105,238㎡, 성의 둘레 1,300m, 높이 약 4m
1963년 지정(1993 일부 해제) 면적 약 10만 8300 m2, 성의 둘레 1,300m, 높이 약 4m.
성의 형상은 경주(慶州)의 월성(月城)과 비슷하며,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삼한시대(三韓時代) 이래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생활근거지에 쌓은 자연발생적인 성곽이다.
한국의 성곽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의 하나이다.

1968년 10월 지금의 달성공원 입구에서 남쪽으로 150m 지점의 성벽 일부를 절단하였을 때 
아래쪽 암반(岩盤) 위에서 김해 회현리 패총(金海會峴里貝塚)과 같은 시기의 유물층(層)을 발견하였으며, 
위쪽의 토성 축조 기반이 되는 층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성곽은 삼국시대에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하였으나, 상층부의 석괴(石塊)들로 보아 흙과 돌로 축조한 것 같다.

성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내당동(內唐洞) 일대의 구릉에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있었으나, 
1923년 일부가 발굴되었을 뿐이고 지금은 시가지 확장으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구 달성 [大邱 達城] (두산백과)

 

관풍루

 

관풍루[觀風樓]

건립 시기 : 1601년(선조 34)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1 달성공원 내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1982년 03월 04일 지정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건립된 누정. 누각·조경 건축물. 문화재자료.

대구 문화재자료 3호.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1601년(선조 34)에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

1601년(선조 34)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宣和堂)의 남서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門樓)를 만들어 관풍루라고 불렀다. 현재 달성공원 북쪽에 옮겨 세워져 있는데 

1906년 당시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이 대구읍성을 철거할 때 건물만 옮긴 것이다.

1917년 달성공원 입구로 이전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며,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화강암 외벌대에 전(塼)을 깐 기단 위에 세워졌다. 

하층은 어칸이 양협 칸보다 넓으며, 상층은 통간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사방에 30cm 폭의 쪽마루를 돌출하여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다. 

상층에는 배면 어칸 바로 앞에 1칸 크기로 반 칸 너비의 나무계단 18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지붕의 내림마루에는 잡상(雜像)이 장식되었다.

구조양식은 화강암 정평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와 함께 연화를 투각한 앙설(仰舌)과 돋을새김을 한 쇠서 및 봉두가 장식된 이익공양식이다.

상층의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 대들보 위에 대접받침을 얹고,

초각한 양봉과 첨차 및 소로를 결구하여 각기 보와 종도리 및 장여를 받도록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단청은 모로단청이다.

관풍루의 원래 명칭은 폐문루(閉文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것을 알리면서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지금의 관풍루란 이름은 ‘감사가 누상(樓上)에서 세속을 살핀다(觀風世俗)’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성공원의 출입문을 들어서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최제우 동상이 있는데,

그 뒤편에 설치된 돌계단 34단을 오른 높은 언덕 정상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풍루 [觀風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토성 위를 걷다 보니 북서쪽 모퉁이에 돌계단의 형태가 보인다. 그 외에는 거의 흙만 밟고 지나간 편한 길이다.

매표소 정문의 안쪽 부분

 안내도에 서문이 있었는데 문을 보지 못했다.

다른 안내도를 자세히 보니 토성의 외부 아래 길가에 있는 것 같다.

토성 둘레를 돌면서 서쪽 부분을 지날 때

동물들의 냄새가 많이 난다.

물개의 부르짖는 소리도 드렸다. 

배가 고팠던 것 같다.

성에서 내려와서 비석들을 몇 기 돌아보는 동안 서쪽 위쪽의 축사에 덩치 큰 코끼리도 보였다.

 

삼성상회터 안내가 있는데...

삼성상회는 세계적 기업 삼성그룹의 모태이자 시발점이 되는 곳.

1938년 호암 이병철은 당시 서문시장 인근에 삼성상회를 설립.

대구 사과, 포항 건어물을 만주와 중국에 수출해 돈을 벌던 이병철은 무역업 이외에도

'별표국수'를 창업해 큰 소득을 올렸다.

국수회사는 1960년대까지 이곳에 존속.

당시 삼성상회 건물은 5평 남짓한 사무실과 작은 공장, 전화가 한 대, 국수기계 등이 있던 공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2001년에 삼성상회 터를 기념해 1/25로 축소해 만든 당시 건물의 청도 모형과 이병철 선생의 정신이 담긴 송악과 대나무가 심겨져 있다.

삼성상회터

이정표에 신경쓰다가 이걸 볼 수 없어 대구 중구골목투어 앱에서 캡처한 사진으로 대신한다.

바로 앞에 3호선 달성공원역이 있어 전철을 이용하여 건들바위역으로 이동하였다.

달성공원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어 계획했던 트랙을 일부 수정하였다.

산길샘 앱에 간단한 루트를 그렸는데 14km 정도 되었다.

거의 직선을 많이 사용했기에 실제로는 그보다 더할 것으로 예상했던 바.

귀가 열차에 맞추려면 총 5시간 정도인데 전체 도보로 생각한 것을 수정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순서도 제법 뒤섞였다.

 

어린 시절엔 이런 것을 '공중전차'라고 했던가.

3호선은 고가로에서 달리는 형태다.

몇 개를 생략하기로 하고 건들바위로 가서 대구향교, 그리고 천주교 대구교구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건들바위역 

건들바위 역에서 내릴 때까지 건들바위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못했다.

그러다 보니 3번 출구로 내리는 게 아닌데...

반대방향으로 약간 탐색하다가 뒤돌아 길을 건넜다.

교차로의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대성교회에서부터 '건들바위 역사공원'까지 돌아보는데 뭐야 '공원'이라고 할 것까지야 되겠나..

다음카카오 지도를 확대해 보았더라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걸...

시간만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었기에...

 

건들바위 교차로에 있는 대성교회는 건들바위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건들바위는 대구 대봉동에 있는 바위로 바위 옆의 절벽과 더불어

대구분지의 지반 구조를 잘 드러내는 바위다.

원래 바위 앞에 냇물이 흘러 정취가 있는 곳이었는데 

정조 때 판관 '이서'라는 사람이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막았던 것을 

그 때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분수와 폭포를 설치해 물이 흐르도록 하고 있다.

 

 

대구향교 대성전

 

대구향교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다.

조선시대 1398년(태조 7년)에 성현의 위패를 봉안, 지방민을 교화, 교육하기 위해 교동에 세움.

대성전은 문화재자료 1호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기념공원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지금의 대구 학생들은 그 때와 같지 않아....

천주교 대구교구

먼저 이 곳을 찾은 것은, 지난 번 청라언덕을 갔던 때와 같은 생각이...

안익사 / 1931년 불어 Annexe (별관)에서, 1980년 정월생 아녜스의 공산댐 수몰 시 기증받은 건물, 빈소로, 쉼터로 사용

 

안세화 초대주교 흉상

대구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었던 Demange(안세화)주교가 루르드 성모굴을 본따 건축한 붉은 벽돌쌓기 건물인 성모당을 1918년에 만들었다.

성모당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떠 드망즈 주교가 건축한 건물.

가능한 동굴의 크기나 기타의 세부적인 것들까지도 루르드 동굴과 똑같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성모당은 붉은 벽돌의 건물로 내부에는 암굴처럼 꾸미고 그 안에 마리아상을 모셔놓았다.

각 부분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의 짜임이 정교해 지금까지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건물 윗부분에 

'1911 EX VOTO IMMACULATE CONCEPTIONI 1918'

라고 쓰여 있는데 

1911은 대구교구청이 처음 생긴 해

1918은 드망즈 주교가 하느님께 청한 세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해를 뜻한다.

'IMMACULATE CONCEPTIONI'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허원에 의하여'

라는 뜻이다.

성모당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신학생들의 수련 공간이라...

 

성 김대건 신부 동상[聖金大建神父銅像]

이쪽이 정문인가 싶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루카 10:37

 

누가10:37의 공동번역을 참조하면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개역개정에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표준새번역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율법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제사장과 한 레위인,

그리고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고 주막에서 주인에게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내가 갚겠다고 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율법사도 사마리아인이 참된 이웃이라는 뜻으로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하니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여라'

라고 한 것이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를 악용하는 무리들도 있지 않나.

지난 번에 보았던 관덕정과 남산교회 앞을 지나 길을 건너 현대백화점 부근에 뭔가 볼 게 있었다는 

기억으로 좌우를 찾다가 마지막에야 

기억한 것이 바로 '동학교조 최제우 순도비'다.

 

경상감영의 옥에 갇혔다가

아미산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인데 

관덕정이 있는 곳이 바로 아미산이었다고 했었지.

 

관덕정에서 길을 건너 사람의 왕래가 많은 백화점 앞에 이 비가 세워져 있다.

 

전번에 지났던 길을 일부 거치면서 진골목을 지나 화교학교 부근을 스쳐 갔다.

기차 시간이 가까와져 일단 국채보상기념관은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으니

유독 젊은이들이 많은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동성로 젊음의 거리였던가.

2.18 기념 중앙공원을 잠시 들려 시민들의 휴식과 대화를 잠시 듣고

트랙을 따라 이동하여 국채보상기념관을 들러 꼼꼼히 보았다.

 그 때는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이 방해를 받았지만,

전국적으로 몇 달 사이에 확산되어 가는 모습이 지도에서 잘 나타났다.

인상 깊은 조형물이 하나 있었는데 입구 가까이에 앉은뱅이 걸인이 의연금을 보태는 이야기가 있었다.

금연운동에 임금까지 동참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구에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 시대는 통신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할 때였다.

 

지금의 국채는 어찌하랴....

 

이 운동 확산이 서문시장 상인들의 활동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아녀자들도 적극 동참

 

기녀들도 동참했다고 한다

 

가톨릭신문 2021.6.27[제3251호,8면]의 기사에 의하면 '서상돈 선생 선종 108주년에 부쳐'라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서상돈(徐相燉·아우구스티노·1850~1913)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로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일제로부터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꿈을 가진 선각자였으며, 

대구대교구(당시 대구대목구) 발전 과정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보부상으로 부를 축척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당시의 드망드 주교일기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
대구의 주교관과 수녀원 부지의 대부분은 그의 기증에 의한 것이다.
평신도 신앙의 모범적 신앙인, 애국자, 선각자, 국채보상운동에 의한 책임과 나눔의 실천 등은 

이 시대가 본받아 이어야 할 것이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58507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물에 등재되었다.

 

 

기념관에서 나와 화폐전시관을 들렀다

우리나라 화폐전시공간과 다른 한 방은 외국의 화폐가 전시되어 있었다.

 

 

기차 시간을 잘못 기억하여 바쁘게 택시로 대구역 이동

4분 전에 도착하여 내려가서 곧 승차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산은 휴대만 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우리 동네는 비가 제법 왔단다.

 

 

 

대구골목투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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