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한산 건지산, 기린봉, 문헌서원, 목은 이색 묘, 한산모시관 20191114 목 뉴한사랑
<희리산 가는 길에 동서천에서 내려 건지산으로>
코스 : 한산면행정복지센터-한산이씨묘-한산읍성발굴현장-건지정-봉서사-문헌서원-목은이색묘-기린봉-면사무소 원점
07:20 덕천동 버스 탑승
10:56 광암삼거리 하차, 택시호출하여 탑승
11:09 한산면행정복지센터 도착(충남60바8012)
친절한 기사 감사, 면소에 들어 안내 홍보물 하나 얻어...
11:14 면소 앞 기념 촬영
11:15 한산이씨 시조묘역
11:16 건지산등산로 입구[정상0.75]
11:18 한산읍성서북치성 문화재 발굴조사(20190805-1214)
11:19 한산읍성안내판
11:30 [한산면사무소0.5, 건지산정상길1/0.3?,-길2/0.15]
내가 그린 트랙은 2이었는데 길이 잡목 등에 막혀 불편하다. 약간 돌지만 1이 많이 다닌 길이다.
11:38 정자(건지산정,乾止山亭) [한산면사무소0.75, 봉서사0.45]
이 산에서 건지산을 표기한 한자의 지자가 3종류였다.<그칠止, 지초芝, 이를至> 정자에만 그릴지를 사용했다.
같은 장소에서 건지산성을 안내한 목판에 건지산성의 건지산은 乾芝山이다.
11:50 [건지산성0.3, 문헌서원2.1]
등산로 우측으로 봉서사 내려 가는 샛길이 있다.
11:53 봉서사 바로 위 고적표석 <고적제 92호 건지산성>
여기서는 건지산성乾至山城이라고 표기 했다.
'천년솔바람길→'안내표지
11:54 봉서사에는 보물 제1754호 '봉서사 목조 아미타여래목조삼존좌상'이 있다. 조성연대가 1619년이라는 기록이 배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12:02 '건지산성' 안내판
12:04 차도를 따라 가다 우로 이탈하면 등산로
12:06 '한산이씨 원식공 세장지' 입석을 따라 계단으로 오름
12:10 건지산(127m), 서래야의 코팅지 안내가 있다.
12:25 '천년솔향기먹은 옛길' 안내판
여기 안내에 건지산성을 백제의 주류성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12:27 [기린봉↑, 문헌서원←, 옛 문헌서원터→, 봉서사,건지산↓]
12:32 문헌서원/문헌서원에 대한 별도의 안내가 없고, 문화재 안내판이 작은 글씨로 되어 있는 정도
12:37 이색 신도비
12:38 목은 선생 영당
12:41 목은 선생 묘소
지름길로 가다가 잡목과 가시로 손에 상처
12:53 정상 등로 복귀
13:01 기린봉, 삼각점 [문헌서원옛터0.7, 문헌서원0.6]
13:16 [기린봉0.15, 문헌서원옛터0.5]
13:18 145.5m '작은기린봉'이라고 해야할 듯, 서래야 기린봉, 서래야는 서천인이라고 하니 뭔가 이유야 있으려나. 앞으로 진행하자는 장의 의견을 버리고, 되돌아 옛문헌서원방향으로 하산, 그래야 원점까지 시간이 맞을텐데...
13:30 고촌리 마을회관<고촌리의 유래 안내판, 주차장>
13:33 마을 입구 삼거리에 다시 고촌리 유래 안내판
[박경수선생생가0.7→, 서천이종선효자비0.27←]
13:36 [봉서사2.0, 박경수생가0.5, 이종선효자비0.5]
13:47 호암리 유래 안내석
13:53 현산제일교회
13:54 성외리 안내석
14:03 소곡주 장인 서원봉(한산소곡주010-5422-3366)
14:20 한산모시전시관, 홍보관
15:10 정류소에서 산방버스 만나 탑승
15:20 신성리 갈대숲 관광/기답지라 잠시 보고
서천9경
1경. 마량리 동백나무숲, 해돋이
2경. 신성리 갈대밭
3경. 한산모시마을
4경. 문헌서원
5경. 춘장대 해수욕장
6경.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7경. 금강하류 철새도래지
8경. 장항송림산림욕장과 스카이워크
9경. 서천갯벌과 유부도
유성에 가서 식사하고
21:30 귀가
서천의 건지산을 선택하게 된 것은 건지산성이 백제의 주류성이라고 비정하는 학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건지산성 하나만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주변에 목은 이색의 묘소와 문헌서원이 있고, 한산모시관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희리산을 가는 뉴한사랑산악회에 희리산을 추천해 놓고는 오래 되어 나홀로 기차를 세 번 갈아 타고 희리산을 다녀왔다.
추천한 책임을 다하면서, 새로운 산을 간다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4명이 가려고 했는데, 오늘 장선생이 합류하게 되었다.
동행하는 4명이 모두 희리산은 미답인데도 동참하려는데 고마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서천IC로 바로 가면 산행이 더 일찍 시작되는데, 동서천IC로 가도록 허락해 준 김기사, 회장, 대장 모두에게도 감사 드린다.
나로서는 서천이 3회째다.
두 번째는 첫째처럼 기차를 이용할 수 없도록 시간이 바뀌어 KTX를 환승 이용하면서 마량포구와 최초성경전래지 관련 여행을 한 것이다.
장선생의 트랙은 약 15km 코스로 산을 걷는 계획이었기에 약간 아쉬웠을 것 같다.
나는 건지산만 돌면 4km로 희리산 팀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희리산 B팀이 시간을 늘려주어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문헌서원과 묘소, 그리고 구 서원지 방향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 코스인 한산모시관은 입장하지 않음으로 은근한 항의의 의사를 표시하는 장선생은 다음에 나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동행한 모두가 나보다 발이 빠른 사람들이다.
그래도 함께 해 주니 고맙다.
광암삼거리에서 버스를 하차했을 때 이미 시간이 11시가 넘었다.
처음 계산으로 버스가 서천으로 바로 간다면 우리는 서천IC삼거리에서 20여 km를 되돌아 나와야 하고 택시비도 25000원 정도, 시간도 더 걸릴텐데, 택시비도 절약되었다.
한산면행정복지센터에 내려서 산행을 시작하고 거의 원점회귀를 했다.
택시기사가 소개한 '소곡주' 명인의 집으로 가서 한 병씩 샀다.
나는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한 김기사에게 한병...
나한은 차에서 동료들과 ...
그 집에서 산행을 마무리하는 앱을 정리하느라 유래를 묻지 못했는데, 한산모시관 앞에서 버스를 받아 타고 신성리 갈대밭을 돌아본 후에 매점에서 아주머니께 물었다.
"소곡주가 곡식을 구워서 만든 건가요?"
"소복을 입고 곡식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왜 하필 하얀 소복을?"
"나라가 망했을 때 만든 거라서요."
"일본에 .."
"아뇨..그보다 더 멀리..... "
"그럼 백제..?"
"그렇습니다."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었다.
충분히 짐작이 가는 말이기에...
건지산, 문헌서원 GPX트랙 : 서천건지산2019-11-14_11-12-33.gpx,
Tr서천건지산20191113.gpx
함께한 5명/한산면 사무소 앞에서
한산읍성[韓山邑城]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터.
충남문화재자료 제134호 / 1984년 05월 17일 지정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5m, 길이 1,700m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문종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이전까지 한산군의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였다. 현재 읍성은 거의 붕괴되고 서벽과 북벽만 일부 남아 있다. 잔존하는 성벽의 높이는 1.5~2m로,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곳이 가장 높다.
서벽 중간지대를 중심으로 남쪽은 밭으로 조성되면서 서벽 자체가 농로(農路)로 이용되며, 동벽은 민가의 담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벽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고 도로가 나 있어 성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8m 정도 떨어진 곳에 해자(垓字)로 보이는 넓이 2m, 깊이 2~3m, 길이 100m 가량의 고랑이 패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읍성 안에는 객사·내아(內衙)·매화당 등의 건물이 있었으며 1929년 발행된 《서천군지(舒川郡誌)》에 ‘우연당(友蓮堂)·객사 중수기’, ‘우연정중수기(友蓮亭重修記)’, ‘연정기(蓮亭記)’ 등이 수록되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 읍성 안에는 지현리석탑,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의 묘소, 읍성 창건 당시 한산군수의 선정비, 현재 매몰이 진행되고 있는 연지(蓮池)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산읍성 [韓山邑城] (두산백과)
건지산성[乾芝山城]
건립시기·연도 : 백제 후기∼통일신라 초기
규모(면적) : 16만 4128㎡
소재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모자축성법 관련 백제의 성곽. 산성.
둘레 1,300m, 면적 16만4128㎡. 현재 동서문지(東西門址)가 남아 있다. 축성시기는 대개 백제 후기에서 통일신라 초기로 보고 있다.
이 산성은 주봉에 위치한 긴 타원형의 산정식(테뫼식)산성과 이 성을 거점으로 서북쪽의 작은 계곡을 두른 포곡형(包谷形)산성, 그리고 서문지의 남서쪽에 두 개의 소규모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테뫼식 산성은 말안장모양[馬鞍形]의 산정에 길이 150m, 너비 30m로서 둘레는 350m에 불과한 작은 성이다. 산성의 북쪽은 험준한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성벽으로 삼았고, 나머지 부분은 토축했으나 붕괴가 심하다. 그러나 산성의 윤곽이나 성벽의 통과선은 찾아볼 수 있다.
이 산성에 이어 작은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은 테뫼식과는 달리 성벽 내부에 돌덩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높은 능선의 성벽 높이는 1m 내외이나 비교적 낮은 서문지 부근에서는 3m의 높이를 보이며 형태도 뚜렷하다. 성 안에는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이 남아 있는데, 지금도 한산(韓山)에서 산성에 이르는 도로는 이 문을 거치게 된다.
또한, 서쪽에도 문지가 확인되었는데, 이 문지에 이르러 앞뒤로 서로 방향이 어긋나게 벌어지면서 개방되었다. 이것은 마치 후대의 성곽에서 볼 수 있는 옹성(甕城: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둘러쳐서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과 같이, 방어를 목적으로 미리 설계된 축성상의 구조로 추정되며, 성벽의 너비는 약 4m이다.
성안에 있는 봉서사(鳳棲寺) 서쪽 지점의 약 200평 가량의 계단형 평지에서 탄화미(炭化米)와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 산성은 그 구조상으로 보아 먼저 테뫼형 산성이 축조되고, 그 뒤에 포곡형 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문지에서 남서쪽으로 600여m 떨어진 높이 약 130m의 산봉에 동서로 두 개의 소규모 산성이 있는데, 동쪽의 것은 길이 95m, 너비 60m의 타원형을 이루었고, 서쪽의 것은 길이 60m, 너비 45m로 동쪽 성에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모성(母城)인 건지산성에 부수된 자성(子城)으로 볼 수 있는 보루(堡壘)인데, 이러한 모자축성법(母子築城法)은 백제산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임천(林川)의 가림성(加林城, 일명 聖興山城)과 함께 금강 하류의 수륙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주류성(周留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건지산성 [乾芝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舒川鳳棲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충청남도 서천군 호암면 198번지, 봉서사
보물 제1751호 / 2012년 02월 22일 지정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1619년에 제작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51호.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아미타삼존 형식이다. 불상 안에서 발원문(發願文)과 함께 다량의 경전류, 다라니,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원문에 쓰여진 내용을 통해 1618년 8월에 시작하여 1619년 1월 완성되었으며, 수조각승 수연(守衍)과 성옥(性玉), 영초(靈招), 응인(應仁), 보희(宝熙)에 의해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수연은 수화승과 더불어 증명(證明)으로도 참여하였음이 밝혀졌다. 정확한 조성시기와 조성주체, 시주자 등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불상을 만든 수연(守衍)은 17세기 전반기에서 중반기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이다. 그는 1615년 태전(太顚)을 도와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제작하였고, 1622년에는 현진(玄眞)을 도와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을 제작하였다. 이후 강화 전등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23년)과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시왕상(1624년), 그리고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9년)을 수조각승으로 참여하여 제작하였다.
서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조각승 수연의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초기의 조각적 경향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상체는 앞으로 내밀어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하였으며 목은 짧은 편이다. 턱이 짧은 넓적한 얼굴에 도톰하게 자리 잡은 넓적한 코, 여기에 짧은 인중과 두툼한 턱으로 중후하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얼굴이 특징적이다. 넓고 두툼한 가슴과 긴 허리에서 오는 중량감 넘치는 형태, 강직한 선 위주로 표현한 도식화된 주름이나 왼쪽 어깨와 무릎 아래로 펼쳐진 독특한 형태의 주름 표현 등에서 그의 조각적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본존불의 수인은 오른손은 가슴 부근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댄 다음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취하였다.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지만 보살의 특징인 화려한 보관과 X형으로 교차한 목걸이를 착용하여 차별화되었다.
봉서사 아미타삼존상은 17세기 전반기에서 중반기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수연의 가장 이른 작품인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수연은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비롯하여 강화 전등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시왕상,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을 만들었다. 불상은 작은 얼굴에 길쭉한 신체 비례, 양감이 강한 옷주름의 표현이 특징으로, 보존 상태가 좋고 조형적으로도 우수하다.
참고문헌
「17세기 조각승 수연의 활동과 불상 연구」(최선일, 『조선후기 조각승과 불상 연구』, 경인문화사, 2011)
「봉서사 극락전 소조아미타삼존불상과 복장유물」(김춘실, 『성보』2, 대한불교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2000)
[네이버 지식백과]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舒川鳳棲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헌서원[文獻書院]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 1984년 05월 17일 지정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이곡과 이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문화재자료.
1594년(선조 27)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곡(李穀)과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한산 고촌으로 이건, 복원하여 1611년 ‘文獻(문헌)’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이종학(李鍾學)·이개(李塏)·이자(李耔)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어 그 자리에 설단(設壇)하고 분향하여왔다.
그 뒤 1969년 지방유림이 복원하여 이종덕(李種德)을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 4칸의 진수당(進修堂), 3칸의 목은영당(牧隱影堂), 5칸의 재실(齋室), 3칸의 전사청(典祀廳), 3칸의 수호사(守護舍),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이색 신도비·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색·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이자·이개·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인 진수당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전사청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장소로, 수호사는 관리인의 숙소로 사용하며, 목은영당에는 이색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8변(籩) 8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 임야 6,000여 평과 목은영당 대지 1,500여 평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헌서원 [文獻書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목은 영정
목은묘소
목은이색생가지[牧隱李穡生家址]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다. 고려의 성리학자이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생가터는 조선시대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괴시마을에 있다.
그런데 여기 고촌마을은 태어난 곳이라는 말은...
고촌마을회관
원조 한산소곡주 특징
1. 정성, 좋은 재료, 그리고 전통제조방식
첫째 정성으로 술을 빚는다. 옛날에도 소곡주를 빚을 때는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흰옷으로 갈아 입고 정성을 다하여 빚었다. 지금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품질관리와 장인정신으로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좋은 술은 좋은 재료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으로 찹쌀,누룩,멥쌀,구절초,대두 등 소곡주를 빚는데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우수한 국내산 재료만을 엄선하여 인공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 발효시켜 100일간의 숙성과정을 거쳐 빚는다. 마지막으로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천오백년의 비법을 그대로 이어 받아 전통방식을 고집하여 빚는 원조 한산소곡주는 독특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2.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 앉은뱅이술
술을 빚을 때 누룩을 적게 넣어 빚은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주. 우리의 전통주는 쌀을 주원료로 하고 누룩[麯子]을 발효제로, 물을 용매(溶媒)로 한 발효주가 기본을 이루는데, 누룩을 적게 사용하여 빚는다는 뜻에서 '소곡주[小麯酒]' 또는 '소국주(小麴酒)'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백일주', '앉은뱅이술' 이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1979년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3. 한산소곡주의 유래
소곡주는 현존하는 전통주 가운데 그 역사가 매우 깊은 술로 전해오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다인왕 11년(318년) 추곡이 흉작이 되자 민가에서 제조하는 가양주(소곡주)를 전면 금지하였고, 무왕 37년(635년) 조정신하들과 현 백마강 고란사부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과 함께 소곡주를 마시어 그 흥이 극치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소곡주가 삼국시대 때부터 명성을 얻었던 술로 추측된다.
과거 백제 땅이었던 충남 한산지방에서 마을단위의 가양주로 빚어오고 있는데, 여러 옛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소곡주 제조법의 전형(典型)인 설기 형태를 답습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주류성(한산면 건지산)에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소곡주를 빚어 마셨다 하며, 조선시대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한산 지방의 주막에 들렀다가 소곡주의 맛과 향에 사로잡혀 한두 잔 마시다가 과거 날짜를 넘겼다 하여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4. 살아 있는 술, 한산소곡주
한산소곡주는 찹쌀과 누룩만을 사용하여 저온에서 100일동안 발효·숙성과정을 통하여 빚은 곡주(穀酒)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멸균주·화학주와는 다른 살아있는 살아 있는 술(生酒)이다. 한산소곡주는 색은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돌면서 점성이 있고 향취는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하고 독특한 향을 간직하고 있다. 들국화의 일반 잡균에 대한 항균력으로 잡미, 신미와 곡자 냄새가 전혀 없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주도 높은 최고급 술이다. 한산소곡주는 술 맛 뿐만 아니라 창혈해독의 약리작용이 있으며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혈관운동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화작용이 있고, 고혈압 방지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곡주는 일명 '앉은뱅이 술'로 도수가 높지만 달콤해 상대적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맑은 호박색을 가지고 있고, 진한 단맛이 매력적이며 입 안에 감도는 풍미가 술을 마시고 난 후에도 오래 남는다. 마실 때 온도를 낮춰(10도 정도)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모시떡과 아주 잘 어울린다.
원조 한산소곡주 제조사 정보
1. 원조 한산소곡주 생산자
원조한산소곡주_생산자1
원조한산소곡주_생산자2
제조사 원조소곡주는 한산소곡주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많은 소곡주 양조장 중 한 곳이다. 2012년에 약주 제조면허, 2015년에 일반증류주 제조면허를 취득하고 술을 빚고 있다. 2018년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약주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그 품질력을 인정 받았다.
2. 원조 한산소곡주 생산지
원조한산소곡주_생산지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가면 일년 내내 술(소곡주) 익는 냄새로 가득합니다. 집집마다 항아리 속에 술이 가득하고 살가운 인심도 가득하게 채워져 있으며, 한산 아낙네들 중 열에 아홉은 소곡주를 빚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을 전체가 백제 천오백년 전통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조 한산소곡주 - 천오백년의 맛과 향이 백일의 정성에 담기다 (한국전통주백과, (사)한국전통민속주협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갤러리, 플레이온컴,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모시풀
충남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이 좋은 모시. 예로부터 한산모시는 그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신성리 갈대밭 주차장
신성리갈대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新城里)에 있는 갈대밭.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으로, 너비 200m, 길이 1.5km, 면적 10만여 평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제방도로에 올라서면 드넓은갈대밭이 눈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한산면 면소재지에서 강경 쪽으로 300m가량 지나삼거리에서 금강 쪽으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3㎞쯤 가면 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곰개나루터(진포)라고 불렀던 곳으로, 고려 말 최초로 화약을가지고 왜구를 소탕시킨 진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역적으로 금강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퇴적물이 쉽게 쌓이고 범람의 우려로 인해 강변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무성한 갈대밭이 조성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성한 갈대숲이었으나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전체 갈대밭 면적의 2~3% 정도만 '갈대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나머지는 보존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갈대공원은 양옆으로 갈대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2㎞ 남짓한 갈대밭 산책길에 박두진·김소월·박목월 등 서정시인들의 시를 써놓은 통나무판자가 걸려 있다.
1990년 금강 하구둑이 완성됨에 따라 근처에 넓은 담수호가 조성되면서 청둥오리를 비롯한 오리류, 고니류, 기러기류, 괭이갈매기 등 매년 40여 종, 10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찾아드는데, 특히 12월과 1월 사이에 절정을 이룬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성리 갈대밭 [新城里─]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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