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방문 그 두 번째
성경전래지기념관과 아펜젤러순직기념관을 다녀오다.
20181008 월
지난 6월 20일에 서천 희리산을 찾은 것은 기차로 순천,익산에서 환승을 하면서 무궁화를 타고 갔는데, 이번 답사는 KTX로 천안아산까지 가서 장항선으로 갈아타고 아산역에서 서천으로 간 것이 다른 이동방법이었다.
그건 순천에서 이어지던 무궁화의 연결 시간이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서천에서 마령포구까지의 이동도 생각해야했기 때문이다.
동행한 두 분의 건강도 고려해서 중간 연결을 단순화한 것이기도 하다.
매주 월요일에만 있는 새벽의 KTX를 타기 위해 04:20에 만났다.
택시를 콜할까 했더니 제일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이장로님이 그럴 필요가 없단다. 택시가 많이도 있단다.
이 새벽부터 일하는 택시기사도 있구나 싶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다.
이런 노력이 없는 이들에게 까지도 지원하는 나라가 고맙기도 하지..
나는 1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두 분은 나보다 모두 일찍 나왔다.
택시를 타고 구포역에 도착한 시간은 탑승까지 약 15분이 남았다.
04:51에 구포역을 출발하는 열차를 세명이 나란히 자리잡고 간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나오면서 신발 한짝이 바뀌었다.
다행히 모두 검정색이라 조금 낫지만 우측 신발은 발등에 약간 괭택이 있고 가볍게 신는 운동화, 좌측은 트래킹화다.
우측이 잘못 신어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냥 가야하는 수 밖에 없다.
3명이 한꺼번에 나들이 하는 게 4년만이다.
2014년 10월 예천 회룡포를 다녀올 때 함께 갔는데, 그 때도 시간 맞추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2년이 걸린 것 같았다.
천안아산역에 내려서 장항선 아산역까지는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역 구내에서 이동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지난 번에 네이버 검색시에는 약 400m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었다.
오늘 차 내에서 다시 검색하니 구내 이동인 것 같았다.
천안아산역에서 환승통로를 이동하면서 전광판에 나타난 시각은07:09였다.
이제야 밝아지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는 정도다.
오르내리면서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귀가시에 부산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올라가니 서울방향이라 다니 내려가서 물어보고야 길을 찾았다.
처음 가는 이들에게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은 미로같은 통로였던 것 같다.
서천으로 내려가는 무궁화 열차에서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기도 하면서 보니 온양온천도 지나고, 김좌진장군의 묘소도 좌측으로 보였다.
몇 년 전에 다녀온 오서산도 멀지 않았다.
이 부근의 미답산들도 이런 방법으로 답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서천터미널에 전화를 걸어보니 터미널이 아닌 서천역에서도 시간에 맞게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터미널까지 택시를 탈까 하고 계획하기도 했었다.
서천역 버스정류장에 있는 버스시간표를 사진에 담았다.
대체로 한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었다.
서천역에서 9:50에 동백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10시에 서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다.
이동 시간이 1시간30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1시간 정도에 도착했다.
마량정류장에서 보니 10:51이다.
마량리에 내리니까 바로 좌측에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타고왔던 이양선이라고 불린 영국의 배가 돛대를 올려서 만들어져 있고, 그 옆에는 조금 더 크게 조선의 배 판옥선 한 척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이 화장실과 수도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영국의 배는 중국 연안과 우리 나라 서해안을 탐사하던 알세스트호(함장 머리에 맥스웰)와 리라호(함장 바실 홀)이며 이 배는 마량진 갈곶에 정박하게 되었다.
이들은 당시 마량진(馬梁鎭)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열(李升烈)에게 모두 세 권의 책을 주었는데,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성경이었던 것이다.
성경이라는 기록은 영국측의 기록에 의해 확인될 뿐이며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그 성경이 '킹 제임스' 성경이었으니까...
해변에 조성된 공원에는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고, 조형물들을 설치했는데, 바닥에 대리석을 깔고 성경 구절을 새겨 두기도 하고, 앞에 말한 영국배와 조선 판옥선을 재현해 두기도 한 것이다.
포구의 양쪽으로 방파제가 감싸듯이 끝이 안으로 약간 굽어 있고, 그 사이에 또 조그만 방파제가 앞면을 가로막아 파도를 막도록 만들어져 있다.
포구에는 고가사다리차에다 포크레인 비슷한 중장비가 와서 꽃게인지 뭔가를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수산시장에서 보니 아마 그게 꽃게가 맞는 것 같았다.
해변을 바라보면서 대형 공연장이나 집회장의 용도로 쓰이는 공간도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상당한 면적의 주차장도 있었다.
해변길 옆에 쌓인 검정색 석판을 보니 모두 성경구절이 쓰였는데, 맨 처음에 본 건 사도행전이었는데, 요엘서도 보이고, 그러니까 상당한 분량의 성경을 석판에 새긴 것이다.
대충 보니 10개 정도씩 2줄로 세워 12쌍 정도 되는 걸로 보이 200장은 더 될 것 같다.
18줄의 세로쓰기로 새겨 놓은 성경구절을 새긴 석판이 80cm,120cm,5cm 정도는 될 것 같다.
아마 어느 둘레에 세운 것 같은데 조성 중인지 기획 의도와 다르게 폐기된 것인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한국최초성경전래지기념관'은 곳곳에 안내판과 도로표지판이 잘 되어 있다.
도보로 300m 정도 이동하여 '성경전래지기념관'을 돌아보았다.
여기는 입장료가 있었다.
면제에 관한 안내가 없어 묻지 않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이 시설은 교회가 아니고 서천군청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부 시설도 1층에서부터 안내를 받고 전시물을 돌아보며 올라간다.
지하1층은 사무실, 기계실, 주차장으로 되어 있고, 1층은 안내데스크로 티켓발매, 2층은 전시실이다. 3층으 카페, 특산물판매장, 4층은 다목적실, 예배실, 세미나실로 쓰인다.
전시관의 한 편에 지구본도 있는데, 그 옆에 해설에 '알세스트호에 오른 조대복 일행이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에 조대복은 어린아이처럼 지구의를 손으로 돌려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마치 그 당시의 지구의로 착각할 상황이다.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의 지도에 남과 북이 색깔이 다르게 구분되어 있다.
당시에 영국인들이 대포의 발포 시연을 했다는 기록과 함께 모형 대포에 시연시뮬레이션이 있었다.
발사버턴을 누르면 모니터에서 바다에 포가 떨어지면서 폭음이 들리고 물기둥이 솟으면서 물고기도 튀는 장면이 연출된다.
당시에 받았을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적 배경도 안내되어 있었다.
『킹 제임스 1세(1566.6.19~1625.3.2)는 스튜어트 왕가 출신 중 최초의 영국 왕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기를 조합하여 오늘날 영국의 국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통일된 하나의 영어성경,
1611년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의 출간 역사는 다음과 같다.
- 1525년 틴데일 성경 'The Blble in blood'
- 1538년 영국성공회 성경 'The Great Bible' 출간
- 1568년 영국성공회 성경 'The Bishops Bible' 출간
- 1603년 제임스 1세 즉위
- 1604년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왕명으로 통일된 영어성경의 번역 지시/47명의 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세 곳에 모여서 번역 시작
- 1611년 영국성공회 최초의 완역영어 '킹 제임스' 'The King James Bible' 성경 출간
영국의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원문으로부터 직역한 통일된 영어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즈음인 1603년, 스코틀랜드 제임스6세가 제임스1세(King James)로 영국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는 1604년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교회의 문제들을 심의하던 중에 대학학장 존래놀즈의 제안으로 영국 최고의 성서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로운 영어성경 번역을 명하였다.
실제로는 47명의 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등 세 군데서 모여 6개 그룹으로 편성, 15개의 번역 기본 원칙을 수립하였다.
또한 각 그룹별로 번역을 분담, 1604년에 시작하여 1611년에 최초의 완역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출판하였다.』
한글성경 번역사도 안내되어 있다.
열차 시간 관계로 2층에서 엘리베이트로 3층은 패스하고 4층으로 올라갔다.
안내를 하면서 4층에서 뒤로 돌아보며 큰 창으로 밖을 보면서 사진을 찍으면 십자가가 희미하게 나타난다고 들었다.
물론 기답자의 사진도 보았다.
강단에 세운 빛나는 십자가의 영상이 창에 비치어 반사되는 모습이 찍힌 것이 아닌가.
잘 기획 된 연출이다.
밖에 나와서 3명이 기념관을 배경으로 한 컷을 남겼다.
나무의 틈새에 세우고 10초 타이머를 설치하여 찍었다.
나가면서 시간이 12시가 넘어 식당들을 보았지만 모두 불이 꺼진 상태다.
오늘의 이 곳 관광객은 우리 3명이 전부인 것 같다.
마을회관 50m 안내판이 붙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마량최초성경전래지0.4km, 철새나그네길]이라는 안내판은 있는데,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안내판의 안내가 없다.
사진으로 미리 보지 않았다면, 지도를 미리 검색해보지 않았다면 물어서 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진입로에 차량은 올라갈 수 있었지만 화려한 길은 아니었다.
입구에 관람안내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문이 열려 있어 그냥 들어가 보았다.
지하1층부터 보고 올라가라고 안내되어 있다.
지하1층이 긴며관의 주전시실이다.
지상1층은 이벤트실, 2층은 기념관 파송선교사전시실, 3층은 아펜셀러 순직장소전망대다.
그런데 옥상의 전망대에 망원경까지 있어 보았지만 앞에 건물이 막아 어청도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뒤돌아보니 철계단이 있어 옥상에 올라가게 되어 있고, 다른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어청도 방향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 같다.
거리는 약 50km가 넘는데 오늘의 시정은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다.
지하부터 올라오면서 보았는데, 아펜셀러의 이야기와 당시의 사정에 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구마가와 마루라는 일본 배의 모형이 있었는데 아펜셀러는 이 배와 함게 수장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성경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보니 전봇대에 '아펜젤러순직기념관 330m'라는 안내가 하나 있고, 종네의 담장에 옅은 색으로 방향 안내가 하나 있었다.
아펜젤러순직기념관은 감리교회건물과 함께 있었다.
전시된 자료는 좀 원시적인 자료들이지만 성실해 보인다.
성경전래기념관은 ICT기술이 접목된 현대화된 시설이었지만, 이 곳은 아날로그적인 자료들에 여러 사람들의 기증품들이 채워져 있고, 후원한 교회들이 있었다.
한말 조선 사회에 변혁을 가져다 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봉건사회의 때를 벗고, 영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준 분들이 있기에 오늘의 이 민족이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닐까.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그 불길이 다시 한 번 살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기념관에서 내려오면서 시계와 버스시간표를 보니 지금 3분 후에 서천역으로 가는 버스가 한 대 있는데.. 좀 아깝다.
12:55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서천터미널 부근의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맛있는 식사를 할 여유도 있었는데, 이 차를 생각했더라면 조금 더 서두를 걸 그랬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3~4분 전에 지나갔을 것 같은 버스를 생각하며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사실은 최대한으로 잡아 14:55 출발하는 걸 타면 아슬하게 기차시간에 맞으 것 같고, 14:35버스는 택시를 한 번 타야겠고, 13:55 버스를 타면 역에서 많이 기다리겠고, 결국은 13:35 버스가 오는 걸 보고 공원에서 간식을 먹다가 급히 일어나 철수했다.
서천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간식으로 배를 채워서 먹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 버스는 역까지 가지 않기에 시장에 내렸다.
결국 간단하게 먹기로 하고, 식후에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3명이 제각기 지역 경제를 위해 조금씩 기여를 하고 택시로 서천역으로 갔다.
역에서 쉬는 동안 부산출신의 현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보내다가 8분 전에 일어났다.
서천에서 아산까지는 무궁화 16:00~18:00, 2시간 코스다.
아산에서 2시간2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21:34에 구포에 내릴 KTX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아침에 매점에 본 주인이 기억하고는 잘 다녀왔는지 묻는다.
무궁화호는 USB케이블을 사용할 수 없어 충전이 곤란했지만 KTX에서는 충전하면서 폰을 이용하였다.
버스도 일반은 없는데 우등은 좌석마다 있어서 편하게 이용한다.
기차가 예정보다 7분 정도 늦게 도착하였다.
택시를 타고 귀가하여 22:00에 귀가하였다.
4년만의 '믿음의 형제들 나들이'는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양선의 재현
판옥선의 모형에 화장실
성경전래지기념공원에 세운 안내문
마량포구에서의 어로작업
발포 시연 시뮬레이션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새벽의 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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