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안동의 봉정사, 국보와 보물들

benel_jt 2017. 5. 3. 11:11

안동의 봉정사, 국보와 보물들




봉정사 만세루[鳳停寺萬歲樓]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었다.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625∼702)이 세운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목조건축 가운데 가장 오래된 봉정사에는 만세루를 비롯해 극락전(極樂殿:국보 15), 대웅전(大雄殿:보물 55), 화엄강당(華嚴講堂:보물 448), 고금당(古今堂:보물 449), 고려시대의 3층석탑(경상북도유형문화재 182)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봉정사의 대웅전과 극락전에 들어가려면 만세루라는 중문(中門)을 통과해야 한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바람막이판을 달았다.
건물의 구조는 2층 누각식으로 건축되었으며, 1층인 아랫부분은 자연석 기단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우하주는 누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며 사찰의 중정으로 오르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만세루는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法鼓)와 목어(木魚), 운판(雲版)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鼓樓)의 기능도 겸한다.
누문은 대부분 2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사찰의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의 기능을 하고, 위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운판·법고·범종(梵鐘) 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만세루 [鳳停寺萬歲樓] (두산백과)



봉정사 화엄강당 [鳳停寺 華嚴講堂]


화엄강당은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인 극락전 앞마당 향우측에 세워져 있으며, 고금당의 맞은편에 있는 강당 건물이다. 정면은 대웅전 마당 쪽을 향하고 있으며 극락전 쪽은 뒷면이다. 평면이 정면 3칸, 측면 2칸인 소규모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구조, 기법, 양식 등 모든 점에서 고금당과 유사하다.
가구는 무고주오량가이며, 공포의 구성은 헛첨차, 첫째살미, 출목첨차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첨차의 형태는 끝부분이 수평이나 밑에서 쳐다 볼 때 화염처럼 치솟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첨차의 측면에 당초를 그렸으나 식물문양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아니라 화염처럼 타올라가는 인상적인 모습인 것이 주목된다. 출목첨차는 주심포계 첨차의 형태에서 벗어나 화반형으로 변해 있다. 포벽에는 화반을 두지 않았으며 아무런 장식도 가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공포를 두지 않고 초각형 대형 보아지를 두어 대들보를 받치게 하였다.
평면 구성은 남쪽 한 칸이 부엌이고 나머지 두 칸이 온돌방이다. 이것은 건물의 입면에 그대로 반영되어 방부분의 정면은 4짝띠살분합문, 뒷면은 외짝띠살문이며, 부엌은 정면에 교살창, 뒷면에 판장문을 달았다. 방의 천정은 소란반자, 부엌의 천정은 서까래노출천정으로 되어 있다. 1969년에 해체, 복원하면서 발견한 상량문에 의하면 1588년(선조 21)에 중수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화엄강당 [鳳停寺 華嚴講堂, Hwaõm-gangdang Hall. Pongjõng-sa Temple]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봉정사 대웅전[鳳停寺 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계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인데, 화엄강당, 만세루, 요사채 등으로 둘러싸인 좁은 마당의 북동쪽 높직한 자연석 기단 위에 서남향으로 앉혀져 있다. 평면은 정면 어칸의 간살이 좌우 칸의 간살보다 1자쯤 크고, 측면 3칸의 간살이 동일하도록 짜여 있으며, 내부의 고주는 측면 평주열보다 약간 뒤로 물려 배치되어 있다.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빛을 공급하는 창호의 구성은 정면 3칸 모두 4짝띠살분합문, 측면 앞뒤퇴칸은 2짝격 자살분합문이며 뒷면은 3칸 모두 2짝 판장문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벽은 측면 어칸에만 있으며 내부에서는 이 벽에 단을 베풀고 불화를 봉안하고 있다.
공포는 안팎 모두 2출목이며 공간포는 정면에는 칸마다 2구씩, 측면에는 1구씩 배열하였다. 귀공포의 소첨차와 대첨차를 포갠 형식, 천정 속 주심도리 받침 부재 등이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은 점, 종보 밑받침으로 사용된 산형(山形) 화반이 봉정사 극락전의 타봉형 화반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점, 인(人)자형 소슬합장을 사용한 점 등은 이 건물의 건립년대를 고려말까지 올려 보게 하는 요소이나 전체적으로는 조선 초기 다포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대웅전 [鳳停寺 大雄殿, Taeung-jðn Hall, Pongjong-sa Temple]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안정사 석조여래좌상[安定寺石造如來坐像]


1973년 8월 31일 경북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안동시 월곡면 미질동에서 발굴된 불상으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며, 발굴 후 그곳에 있던 안정사(安定寺)에 보관되어 있었다. 본래 연화좌대(蓮華座臺)에 안치된 석불이었는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훼손되었다.
1971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안정사가 폐사됨에 따라 당시 봉정사 주지 설송(雪松)의 협조를 받아 1973년 극락전의 법당 좌대 뒤쪽에 별도로 보관하여 관리해오다가 새로 지은 요사채 방안에 안치하였다.
봉정사는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경내에 중요건축물과 3층석탑이 있으며,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 제15호, 봉정사 대웅전은 보물 제55호,
봉정사 화엄강당은 보물 제448호, 봉정사 고금당(古今堂)은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安定寺石造如來坐像] (두산백과)





봉정사 삼층석탑[鳳停寺三層石塔]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봉정사는 신라 때인 672년 천태종의 개조 의상(義湘)의 제자인 능인(能仁)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10개 동에 이르는 불당과 동서 양쪽에 있는 암자 2채를 포함하여 9동의 건축물이 있는 안동에서는 가장 큰 사찰이다.
봉정사를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이 3층석탑은 고금당과 함께 극락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가람의 배치나 조성 양식으로 보아 그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2중 기단(基壇)의 네모 반듯한 모양의 석탑으로 기단부에 비하여 탑신부의 폭이 좁다. 각 층 높이의 체감(遞減)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률이 적고 옥개석(屋蓋石)도 높이에 비해서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反轉)이 약하다. 따라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탑의 높이는 318㎝이다.
봉정사에는 이 3층 석탑 외에도 국보 15호인 봉정사 극락전, 보물55호인 봉정사 대웅전, 보물 448호인 봉정사 화엄강당, 보물 449호인 고금당 등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특히 고려의 건물로 주심포집인 극락전과 조선시대의 건물인 다포집인 대웅전이 나란히 있어 고건물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삼층석탑 [鳳停寺三層石塔] (두산백과)



봉정사 고금당[鳳停寺 古今堂]


고금당(古今堂)은 현판에 ‘고금당(高金堂)’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름으로 보아 예전에 금당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승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969년에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상량문에 의해 1616년(광해군 8년)에 중수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기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이때의 중수는 중건으로 보인다. 해체, 복원 이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정면과 뒷면에 쪽마루가 있었고, 남쪽면에 부엌이 있었으며 처마는 앞뒤 모두 홑처마였다. 또 남쪽에 우화루라는 건물과 처마가 잇닿아 있었다. 그러나 복원하면서 우화루 철거, 앞쪽 처마 겹처마로 복원, 쪽마루 철거 등을 시행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때 단청도 새로 한 것이다.
평면 3칸, 측면 2칸인 소규모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측면에 가구부재를 길게 뽑아서 지붕을 받치는 동시에 의장적 효과를 냈다. 정면 3칸에는 2짝 띠살문과 띠살창을, 뒷면 양옆칸에는 외짝띠살문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벽으로 막아 아늑하고 밝은 내부 공간을 형성하였다. 구조는 무고주오량가(無高柱五樑架)이다.
공포는 헛첨차와 살미첨차를 겹쳐 놓은 위에 보머리를 얹되 출목첨차 1개를 끼워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출목첨차는 밑면에 연꽃잎의 곡선을 조각한 주삼포(柱三包) 형식이고, 첨차의 바깥쪽 끝은 모두 날카롭고 짧게 뻗은 수서형이며 보머리는 운궁형으로 길게 뻗어 나와 있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 많이 보이는 수법이다. 한편 도리와 장혀의 결합에서 도리의 둥근 면에 맞추어 장혀 윗면을 둥글게 판 것은 고식이어서 이 건물이 전기에서 중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고금당 [鳳停寺 古今堂, Kogum-dang, Pongjong-sa Temple]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봉정사 극락전 ↑

[네이버 지식백과]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두산백과)
1972년 해체·수리할 때 중앙칸 종도리(宗道里) 밑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1368년에 옥개(屋蓋) 부분을 중수(重修)하였다고 하는데, 이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그보다 100∼150년 정도 앞섰으리라 짐작된다.
건물의 전면(前面)에만 다듬질된 석기단(石基壇)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하여 주좌(柱座)만을 조각하였고, 초석 위에는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극락전 전면과 측면 중앙칸에 판문(板門)을 달았고 전면 양협간(兩夾間)에는 살창을 달았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수리할 때 복원된 것이며 수리하기 전에는 3칸 모두 띠살 4분(分) 합문(閤門)이 달려 있었다.
이 건물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건물로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두산백과)


봉정사 영산암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서후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 의상(義湘)이 세운 사찰로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영산암은 봉정사 서쪽의 지조암(知照庵)과 함께 봉정사의 동쪽에 있는 부속암자로 응진전·영화실·송암당·삼성각·우화루·관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보아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봉정사 영산암은 봉정사의 요사채인 무량해회(無量海會)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영산암의 문루에는 초서로 '우화루(雨花樓)'라고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우화루의 아래를 통하여 영산암에 들어서면 지형의 고저차를 이용하여 마당을 3단으로 구획하였다. 상단에는 주불전인 응진전과 서쪽으로 삼성각, 영화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 동산을 만들었다. 중단에는 관심당과 송암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단에는 우화루가 놓여 있다.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로 지었으며, 맞배집이면서도 총량을 대량에 걸러 놓아 팔작지붕의 가구수법을 보인다. 송암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으로 마루 1칸, 방 3칸, 그리고 방의 전면에 툇마루로 구성된다. 관심당은 우화루와 연결된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송암당과 함께 요사로 쓰이는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口' 자를 이루어 폐쇄적인 형태로 보이지만, 우화루의 벽체를 없애고 송암당을 누마루로 처리하여 개방적인 요소를 많이 채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정사 영산암 [鳳停寺靈山庵]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