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사명대사길
팔십 년 전에는 그가 나였는데(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팔십 년 후엔 내가 그로구나(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85세 되던 해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 뒤 빙긋이 웃으며 남겼다는 서산대사의 선시
- 신흥마을~의신마을~대성마을
- 기암괴석·계곡·푸른 야생차밭…
- 지리산 오지 중 오지 외줄기 길
- 480년 전 서산대사처럼 行禪
- 약 11㎞ 순식간에 4시간 흘러가
- 원통암 청룡·백호 둘러싼 명당
운명일까. 3세 되던 해 한 노인이 평안도 안주의 집으로 찾아와 "꼬마스님을 뵈러 왔다"며 아이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 짓게 했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 때도 돌을 세워놓고 부처라 하고, 모래를 쌓아두곤 탑이라 했다. 9, 10세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이어 여의고 후견인을 따라 한양으로 가 글과 무예를 익혔다. 15세 무렵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원통암(圓通庵·현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서 설법을 듣고 깨달은 바 있어 불법을 공부하다 21세이던 1540년(중종 35)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지어 억불숭유의 조선조에 시들어가던 선맥을 중흥하고, 임진왜란(1592년) 때는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힘을 보탠 서산대사(西山大師·休靜·1520∼1604)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대략의 전말이다. 지난 10일, 대사가 인생과 존재의 의미를 반추하며 오갔던 산길을 따라 걸었다. 대성리 신흥마을에 기점을 둔 그 길은 의신마을을 거쳐 지리산에서도 오지 중 오지로 꼽히는 원통암과 대성마을까지 비탈을 타고 꼬불꼬불 이어진다. 이름하여 '서산대사길(약 11㎞)'이다.
살아생전 지리산과 나눈 대사의 법거량(法擧量)이 입적한 지 400여 년 만에 해빙되어 흘러내린 것일까. 그 길가의 계곡에는 깨달음의 증표인 듯 봇물 터진 봄물이 콸콸 쏟아졌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푸른 야생차밭, 동아줄 넝쿨 칭칭 휘감은 고목, 계곡으로 풀리는 비탈의 실핏줄 계류, 붉고 흰 매화 화사한 농가…. 비단에 무릉도원을 수놓듯 길은 온갖 절경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행선(行禪). 그 길을 걷는 것은 명상이다. 길의 높낮이와 좌우 굴곡이 달라질 때마다 풍경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되풀이했다. 길과 몸을 나란히 한 채 굽이굽이 뻗어내린 계곡도 보행의 리듬을 타고 길에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곤 했다. 계곡의 물소리 역시 높아졌다가 낮아지거나 새소리에 묻혀 잦아들기도 했다. 무엇이 본질이고, 실체일까? 색(色)인가 하면 공(空)으로, 공인가 하면 색으로 변했다. 색은 공이고, 공은 색일까?
대사의 답은 이러하다. '주인은 나그네에게 꿈이야기하고(主人夢說客·주인몽설객)/나그네도 주인에게 꿈이야기하네(客夢說主人·객몽설주인)/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사람(今說二夢客·금설이몽객)/그들 역시 꿈속 사람이지(亦是夢中人·역시몽중인)'. 대사는 사는 게 한갓 꿈이라 했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네(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살고 죽고 가고 오는 것 역시 그러하다네(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아가 생사가 한 조각 뜬구름처럼 덧없다고도 했다.
대사의 선시를 화두 삼아 걷는 동안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4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찰나일까, 영겁일까? 어차피 시간은 인식주체의 마음작용에 따라 다를 터이다. 산행은 신흥마을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에서 시작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50m가량 가면 도로 아래 계곡에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미상)이 입산하기 전 속진을 털어내려고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巖)이 있다. 50m쯤 더 가다 왼쪽 비탈길로 접어든다. 하동군이 조성한 '서산대사길' 기점이다. 길은 외줄기다.
길 아래 계곡에는 지천으로 널린 크고 작은 둥근 돌 사이로 맑고 푸른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화개천이다. 계곡물은 정신의 여과지와 같다. "허망한 욕심과 집착은 내게 실어 떠내려 보내라"며 가슴을 열고 손짓한다. 길 위에 내리쬐는 봄볕은 포근하다. 우리네 삶이 한 줌 봄볕보다 따스한가? 언제 그 온기를 이웃과 나눈 적이 있는가?
자문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의신마을에 이르렀다. 계곡 위에 설치한 출렁다리를 건넌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30m가량 가다 왼쪽 원통암·대성마을 길로 들어선다. 20m쯤 오르다 벽소령산장에서 오른쪽 산길로 방향을 튼다.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계곡은 더욱 깊어진다. 대사는 이 길을 걸으며 세속과 연을 끊었다. 1.8㎞가량 외줄기 자드락길을 따라가면 원통암·대성마을 길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원통암이다.
원통암 가는 길은 호젓하다. 구한말 불이 나 사라졌다가 1997년 복원된 이 암자의 규모는 토굴처럼 작지만, 청룡·백호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데다 앞에는 백운산의 세 봉우리가 안산으로 우뚝 솟아 있어 풍수지리상 명당이라고 한다. 암자에서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왼쪽으로 900m가량 가면 대성마을에 이른다. 인구라곤 달랑 5가구뿐인 심심산골이라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주인이고, 주민들은 객식구 같다.
"우리 마을은 물론 의신마을까지 포함해 전체가 대성마을입니다. 편의상 의신마을과 대성마을로 구분해 부릅니다." 마을 소개를 하는 60대 주민의 얼굴에는 세파의 흔적이 거의 없다. 살포시 미소 짓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팔십 년 전에는 그가 나였는데(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팔십 년 후엔 내가 그로구나(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85세 되던 해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 뒤 빙긋이 웃으며 남겼다는 서산대사의 선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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